슬그머니 잊혀진 '하우스푸어', 시한폭탄 맞나 - 머니위크
정부가 최근 몇년간 지속적으로 내놓은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으로 부동산시장이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그사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을 사도록 종용해 수많은 하우스푸어를 양산한 정부는 국민에게서 눈을 돌렸다. 관련 대책들 역시 자취를 감췄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3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스스로 하우스푸어라고 생각하는 가구는 2013년 기준 248만가구로 전년대비 7.3% 증가했다. 가계소득 대비 대출원리금 상환비율이 20% 이상인 1주택 보유 가구를 대상으로 한 분석 결과다.
하우스푸어 증가 속에 대출받아 집을 산 서민들의 상황도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외형적으로는 저금리 기조와 낮아진 대출 문턱으로 이들의 빚 부담이 조금 줄어든 듯 보이지만 속내를 들춰보면 여전히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형국이다. 이런 탓에 앞으로 하우스푸어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슬그머니 사라진 하우스푸어 대책
정부의 하우스푸어 지원방안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이 사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금융위원회가 김종훈 국회의원(새누리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4월 정부가 발표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 대부분 실적이 없거나 부진해 폐기됐다.
이 정책 중 하나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공약하기도 한 '지분매각제도'는 3개월 이상 연체된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채권은 주택금융공사가 각각 매입해 채무조정을 하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캠코의 지분매각 프로그램은 이용자가 전혀 없고 채무조정 역시 상담 건수는 2287건에 달했지만 실제 지원은 214건(390억원)에 불과해 지난해 4월 폐기됐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 주택의 소유권이 공사로 이전되는 부담이 있어 지원 대상자들은 채무조정제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주택금융공사의 부실채권 매입도 은행들이 대출채권을 매각하지 않아 유명무실해졌다. 주담대처럼 담보가 확실한 대출은 채권을 매각해 채무조정을 하는 것보다 연체이자를 받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이외에 주택연금 사전가입제도도 지원 효과가 적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 5월 말까지 시행된 후 연장되지 않았다.
김 의원은 "대책을 위한 대책을 만들다 보니 정책실패가 발생했다"며 "단기적 지원대책보다는 하우스푸어를 비롯한 국민의 소득개선과 주택시장 여건 개선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빚 돌려막기 나선 하우스푸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우스푸어들은 정부가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한 주담대를 빚을 돌려막는 데 사용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말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9개 주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신규취급액 기준) 중 대출금 상환용도 비중이 31.2%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대출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전인 지난해 1~7월(17.1%)보다 약 2배 급증한 수치다.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 받은 주택담보대출 비중 역시 지난해 1~7월(50.4%) 절반을 넘었으나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 사이에는 39.8%로 하락했다. 이는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구매한 사례보다 다른 빚을 갚기 위한 용도의 대출이 크게 늘었다는 방증이다.
이 중 생계자금 목적은 12.2%에서 11.2%로 소폭 줄었고 전세자금대출 등 기타목적도 20.3%에서 17.8%로 감소했다. 지난해 8월 이후 LTV 구간별로 주택담보대출을 보면 LTV 60% 초과~70% 이하 구간이 67.3%의 증가율을 보여 가장 높았고 70~80% 구간도 61.7% 늘었다.
현재 LTV 산정 기준이 되는 국민은행 주택가격은 호가 위주 가격으로 실제로 거래되는 가격은 적어도 수천만원 이상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LTV 비율은 정부가 파악한 것보다 더 높다고 봐야 한다.
◆실효성 있는 보완대책 시급
특히 전세를 대입하면 LTV 비율은 더 뛰어오른다. 금융권에서 산정하는 LTV 비율에 전세 보증금이 반영되지 않는 탓이다.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이 은행에서 빌리지만 않았을 뿐이지 계약 만료 후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엄연한 빚이다.
한은은 2013년 6월 기준으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보증금을 포함한 LTV 비율이 27.3% 상승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은행 대출에 전세를 끼고 집을 산 사람이라면 대출 원리금을 갚으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셈이어서 역전세난의 우려마저 제기됐다.
여기에 국내외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한계치에 다다른 가계부채, 그리고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식으로 건설사들이 쏟아낸 분양 물량으로 불거질 공급과잉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터라 향후 집값이 내림세로 돌아서면 현재보다 더 많은 하우스푸어가 양산될 판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기 전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해결하고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새로운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 팀장은 "정부는 재무상담과 컨설팅을 통해 하우스푸어가 합리적으로 가계 부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이를 토대로 맞춤형 대책을 내놓는 것이 가장 실효성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현일 한국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도 "이제는 하우스푸어들이 주택에 대한 소유욕을 냉정하게 내려놓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때가 됐다"면서 "정부는 하우스푸어들이 받을 충격을 줄이는 사회안전망 확충 등에 더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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