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또 한 번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번에도 문제는 역시 공격수다. 월드컵마다 반복되는 공격수 고민사(史)가 이번에도 도진 분위기다.
최근 홍명보호는 자나 깨나 공격수 고민이다. 안팎으로 공격수 이야기들이 화제에 올랐다. 브라질과 미국으로 이어진 전지훈련에선 K리거 공격수들이 실험을 받았다. 김신욱과 이근호 등이 홍심 잡기에 나섰지만, 성적이 지지부진했다.
유럽에서도 브라질행을 앞둔 공격수 경쟁이 뜨겁다.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가 독일 분데스리가 복귀전에서 잔디를 밟은 지 1분이 채 안 돼 강렬한 헤딩골을 터트렸다. 박주영(왓포드)은 아스날에서 탈출해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공격수 경쟁은 월드컵 직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공격수는 우리의 오랜 과제였다. 월드컵을 앞두고 공격수 고민은 항상 뒤따랐다. 지난 4차례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안았던 공격수 고민을 살펴본다.
1. 1998 월드컵 - 황선홍 부상 낙마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둔 한국은 당시 전력 담금질이 한창이었다. 차범근 대표팀 감독 지휘 아래 최상의 조합 찾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치명적인 악재를 맞이했다. 간판 공격수로 활약하던 황선홍이 부상으로 낙마했다.
시기도 월드컵 직전이어서 아쉬움은 더했다. 중국과의 A매치 평가전에서 불의의 사고가 있었다. 경기에 나선 황선홍은 중국 골키퍼와 충돌 후 사타구니 부상을 당해 프랑스행이 불발됐다.
중국 대표팀의 거친 경기에 대한 비판과 함께 차범근호는 공격진 운영에 타격을 입었다. 결국 김도훈을 선봉장으로 세우는 것으로 대표팀은 가닥을 잡았다. 이외에도 최용수 등이 출격에 대기했다. 경기 중에도 공격수 고심이 심각했던 한국은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를 맞아 1무 2패로 조별리그 탈락을 맛봤다.
2. 2002 월드컵 - 치열했던 공격수 경쟁
2002년 한국은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갖게 됐다. 2001년엔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본선 무대에 오르기까지 히딩크호에선 치열한 공격수 경쟁이 이어졌다. 많은 후보군이 대표팀을 들락날락하며 히딩크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했다.
2001년 부임 초기엔 김도훈, 박성배 라인이 구축됐다. 4-4-1-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했던 당시 대표팀은 김도훈과 박성배를 최전방을 맡겼다. 하지만 이후 변화는 잦았다. 각종 A매치를 통해 히딩크 감독은 최상의 공격 조합 찾기에 나선 결과였다.
결국, 한국은 황선홍과 안정환을 공격 선두주자로 낙점했다. 선발 황선홍과 교체 안정환의 구도가 유력했지만, 대회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계획은 유동적으로 변했다. 대회 전부터 화두가 됐던 최용수의 대표팀 승선도 성사돼 눈길을 끌었다.
3. 2006 월드컵 - 이동국 낙마, 조재진 원톱
이동국에겐 2006년 독일월드컵이 뼈아픈 기억이 됐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이동국, 이천수 공격라인이 두각을 나타내며 월드컵 준비에 탄력을 받았다. 당시 이동국의 몸 상태도 최고조였다.
하지만 월드컵을 불과 2개월 앞둔 2006년 4월 이동국은 불의의 부상으로 낙마했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활약하던 이동국은 K리그 홈경기에서 무릎 십자인대 부상이란 치명적인 악재를 만나 결국 월드컵이 불발됐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고심도 커졌다. 결국, 대표팀은 조재진을 앞세운 스리톱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안정환 역시 대표팀에 합류해 지원사격했고 박주영 등이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기도 했다.
4. 2010 월드컵 - 판타지 스타, 안정환 합류
허정무호로 무장했던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도 공격수 고민이 대표팀을 찾아왔다. 박주영의 남아공행이 유력한 상황에서 파트너, 제 2 옵션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했다. 허정무 감독도 마지막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여기엔 이동국, 안정환, 이근호 등이 명함을 내밀었다. 예선전에서 좋은 투톱 호흡을 보인 이근호가 우선 앞서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일었다. 이동국이 월드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이동국 쪽으로 분위기가 쏠렸다.
중국 다롄 스더에서 활약하던 안정환 합류 여부도 화두였다. '판타지 스타' 안정환의 경험과 노련미 등이 좋은 점수를 얻으면서 결국 대표팀에 승선했다. 공격진엔 이동국과 염기훈 등이 합류했고 이근호가 막바지 탈락하는 불운을 맛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