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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13번이 우리가 알고 있던 13번 아닌가?”

맨유 팬들로선 땅을 쳤을 통한의 무승부였다. 그 주인공은 박지성과 닮은, 같은 등번호 13번을 단 카디프의 김보경이었다. 박지성이 뒤를 이을 재능으로 꼽았던 김보경이 박지성 커리어에 대단한 임팩트를 남긴 맨유를 상대로 충격적인 동점골을 터트렸다. 어쩌면 기묘한 인연이자 이야기다.

극적인 임팩트였다.

극적인 시간에 터진 골(Last-gasp goal)이었다. 90분이 지나 추가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카디프는 1-2로 뒤져 있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카디프는 2연패로 강등을 실질적으로 걱정해야 할 절박한 위기 상황이었다. 김보경의 헤딩 골이 터진 건 바로 이 때였다. 공이 김보경의 머리에 맞은 순간 시간은 90분 22초였다. 카디프의 모든 팬들이 가슴 졸이던 막판 김보경의 골이 터진 것이다. 그것도 프리미어리그 데뷔 골이었다. 이 모든 것이 김보경이 교체 투입된 지 15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극적인 희비의 갈림이었다. 카디프는 연패의 늪에 빠지지 않으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지만 맨유는 빅4에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맨유가 카디프를 잡았다면 4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감독 교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디펜딩 챔피언의 저력을 복원할 수 있는, 다잡았던 경기였다. 특히나 카디프와 경기 직전 지역 라이벌 맨시티가 식스앤더시티의 스코어로 토트넘을 대파해 맨유로서도 승점 확보가 매우 절실한 시점이었다. 만약 맨유가 4위 안에 진입했다면 프리미어리그 전체 판도가 또 한 번 요동쳤을 만큼 리그의 큰 흐름에 있어서도 중요한 결과였다. 하지만 맨유는 결과적으로 무승부에 그치면서 빅4 진입에 실패했고 6위에 머물렀다.

에브라 “안녕하세요?” 김보경 “네 안녕해요~”

김보경의 골이 더 극적이었던 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연결된 이야기와 장면들 때문이었다. 김보경의 카디프 등번호는 13번이다. 13번은 박지성 선배가 맨유 시절 달았던 번호다. 박지성을 의식해 팀에 요구한 번호는 아니지만 13번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부담과 함께 자부심이 담긴 등번호다. 맨유 선수들의 기억 속에서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을 것이다. 닮은꼴의 외모(물론 김보경은 유재석과 더 닮았지만)를 떠나 붉은 색 저지를 입고 등번호 13번을 단 김보경은 맨유 선수들에게 박지성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저 13번이 우리가 알고 있던 13번 아닌가?”하고 순간 착각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김보경의 활약이 이어지자 중계 카메라가 박지성의 공식 절친 에브라를 이어 비추기도 했다. 김보경과 에브라는 지난여름 상하이에서 열린 박지성 자선축구대회를 통해 만나기도 했는데 오늘 새벽 경기가 끝난 뒤 두 선수가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에브라가 한국말로 먼저 “안녕하세요?” 하자 김보경은 “네 안녕해요.”라고 답했다.

에브라와 함께 박지성이 맨유 시절 절친으로 지냈던 또 한 명의 선수를 꼽자면 리오 퍼디난드다. 근데 또 공교롭게도 김보경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진 건 에브라와 퍼디난드 앞에서였다. 위팅엄이 프리킥을 올리자 김보경은 에브라 곁에 서 있다 돌아 뛰었고 퍼디난드와 루니 사이에서 공중볼을 따내면서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퍼디난드가 마지막까지 김보경과 몸싸움을 벌였지만 김보경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면서 헤딩 골을 성공시켰다. 카디프 선수들은 모두들 몰려들어 환호하는 김보경 위를 덮쳤고 맨유의 모예스 감독은 머리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했다. 관중석에는 퍼거슨 전 감독도 와 있었는데 이 모든 장면들이 하나의 필름처럼 연결되면서 묘한 분위기와 기억을 끄집어냈다.

선배 박지성과 닮은 길

김보경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터닝 포인트의 골이었다. 최근 2,3경기에서 어려운 경기를 했던 김보경은 A매치 부담까지 겹치며 이번 경기서 후반 교체로 뛰었다. 조던 머치, 돈 카위 등과의 주전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김보경은 한 경기를 빼고 프리미어리그 전 경기에 나섰지만 최근 결장하거나 교체 출전하는 빈도가 늘었다. 이러한 타이밍에 결정적인 득점을, 그것도 맨유와 같은 빅 클럽을 상대로 한 기막힌 골로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게 됐다. 시즌 초 맨시티와의 경기서 맹활약하며 승리를 이끈 데 이어 이번 맨유전에서는 골까지 넣으면서 프리미어리그급 경쟁력과 강팀 킬러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한 김보경이다. 프리미어리그 데뷔 시즌임을 감안하면 강렬한 임팩트다. 등번호 13번 선배 박지성의 길과 다르지 않은 흐름이다.

김보경의 골은 이번 시즌은 물론 지난 시즌까지 통틀어 한국 선수의 프리미어리그 첫 골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골 침묵을 깨트리고 코리안 리거들의 존재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었던 김보경의 골이다. 선덜랜드 기성용의 활약과 맞물려 기대를 높이는 일이다. 월드컵을 바로 앞둔 시즌이라 여느 때보다 꾸준함과 집중력을 요하는 시즌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강팀 킬러로 자리 잡기 시작한 김보경의 카디프 다음 주말 상대가 선두 아스널이고 기성용 선덜랜드의 상대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의 명가 아스톤 빌라라는 사실인데 지난 주말의 탄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다려지게 하는 그 한 주의 시작이다.

 

Posted by 우유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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