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능력이 부족해서 졌죠.”
넥센 염경엽 감독은 지난 6일 신년사에서 디테일과 책임감을 강조했다. 책임감을 갖고 디테일한 야구를 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염 감독은 2013시즌을 천천히 돌아봤다. 감독 데뷔 첫 시즌. 야구계에선 염 감독을 보고 “좋은 지도자상”이라며 칭찬했다. 그러나 염 감독은 아니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두산에 2연승한 뒤 리버스 스윕을 당했다”라고 말했다.
염 감독은 “팀 전력이 90% 정도는 완성됐다. 남은 10%를 채워야 한다. 다른 팀이 무서워하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 불안한 마음을 가져야 더 생각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라고 채찍질했다. 염 감독이 말한 디테일과 책임감도 알고 보니 철저한 자기 반성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염 감독의 추구하는 디테일과 책임감의 결론은 ‘1승’이다.
▲ 왜 1승이 소중한가 넥센은 지난해 정규시즌 우승팀 삼성에 3경기 뒤졌다. 쉽게 말해서 4승만 더 하면 한국시리즈에 직행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넥센은 준플레이오프에선 두산에 2연승 이후 1승을 더하지 못한 채 3연패하며 패퇴했다. 1승이 너무나도 아쉬운 시즌이었다. 염 감독은 “내가 투수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3연패했다. 투수 운영을 더 정교하게 했으면 리버스 스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염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1루주자가 후속타자의 좌전안타에 3루까지 가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좌익수가 펌블을 하면 상황에 따라서 3루까지 갈 수 있다. 염 감독은 “2루까지 가면서 ‘펌블 해라, 펌블 해라’는 마음으로 가야 진짜 펌블이 나오면 곧바로 3루까지 간다. 마음 속에서 미리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염 감독은 그런 마음의 준비 없이 천천히 2루로 가다 펌블이 나오면 3루로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주자의 의무는 1루보단 2루, 2루보단 3루, 3루보단 홈이다. 한 베이스라도 더 진루해야 한다. 상대의 순간적인 실수를 이용해야 강팀이다. 염 감독은 “그런 상황이 1년에 적어도 10차례는 나온다. 그걸 잘 살리면 충분히 1승을 추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1승을 차곡차곡 쌓기 위해선 조그마한 플레이부터 승리 확률을 높여야 한다. 그게 바로 디테일한 야구다.
▲ 디테일과 책임감의 또 다른 의미 염 감독은 신년사에서 선수들의 디테일과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건 염 감독 자신과 코칭스태프를 향한 말이기도 했다. 염 감독은 “코치 변화는 없다. 지난해와 똑같이 간다. 한 배를 탔으면 끝까지 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보통 구단들은 한 시즌이 끝나면 코칭스태프 구성을 재정비한다. 다른 팀으로 이동하는 코치, 1군과 2군 보직변경을 하는 코치, 1군 안에서도 타격, 수비, 재활군 등 보직을 바꾸는 코치도 나오게 된다.
염 감독은 “다른 팀으로 떠나겠다는 코치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감독으로 있는 한, 그 코치는 같은 보직을 끝까지 맡길 것”이라고 했다. 1차적인 이유는 책임감이다. 같은 보직을 맡겨야 코치들도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다. 매년 보직이 바뀌면 코치들의 책임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디테일이다. 같은 보직에서 연속성을 갖고 일을 하면 전문성도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디테일을 기할 수 있다. 염 감독은 팀이 1승을 더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염 감독은 “지난해 7~8월에 부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 경험을 했다. 야구란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1승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라고 했다. 이어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기뻤던 순간은 없었다. 처음에 생각한 목표는 달성했지만, 마지막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려웠던 순간만 기억난다”라고 했다. 염 감독은 또 다시 채찍을 들었다. 넥센에 부족한 10%를 채우기 위해 변화를 다짐했다. 그 출발은 눈 앞의 1승이다.